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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본 아이들

11명 중 9명은 글을 완성했다. 그런데 두 아이는 왜 멈췄을까?

by 수쌤 2026. 8. 27.

11명의 아이에게 같은 과제를 주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을 떠올리고,
그 경험을 글로 써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과정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자신의 힘으로 글을 써보고,
어느 정도 글이 완성되면 AI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I에게 받은 피드백을 다시 자신의 글에 적용해보는 활동이었습니다.

11명 중 9명은 글을 완성했습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두 아이는 끝까지 가지 못했을까?

 

두 아이는 정말 같은 곳에서 멈춘 것일까?


첫 번째 아이는 ‘무엇을 써야 할지’가 문제였습니다

첫 번째 아이는 평소에도 글쓰기를 어려워합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 어려움이 큽니다.

 

이 아이는 다문화가정의 아이입니다.

엄마의 국적은 베트남.

가정에서 한국어 책을 충분히 접할 기회가 또래와 달랐고,
한국어 어휘를 자연스럽게 쌓는 경험에서도 차이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아이의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자신이 경험한 일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방학 때 뭐 했어?”

라고 물으면 대답합니다.

“누구랑 갔어?”

라고 물으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그럼 이걸 글로 써보자.”

라고 하는 순간,

아이의 손이 멈춥니다.

 

생각이 없는 것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이에게는 ‘단어 하나’도 생각보다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른에게는 너무 쉬운 단어가
아이에게는 쉽게 떠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기억납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글로 쓰려고 하면
갑자기 막힙니다.

‘재미있었다’고 쓰고 싶은데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았다’고 썼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면 한 문장을 쓰는 데 시간이 걸리고,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다시 멈춥니다.

저는 이 아이를 보면서
글쓰기라는 것이 단순히 ‘생각을 쓰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을 표현할 단어가 있어야 하고,

단어를 문장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문장을 다음 문장으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는 그중에서도
‘표현할 말을 찾는 과정’이 하나의 큰 문턱이 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또 달랐습니다.

두 번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이 아이는 1학년 때 읽기와 관련된 어려움을 확인했고,
난독증 진단을 받은 뒤 몇 년 동안 꾸준히 치료와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평소 교실에서 이 아이를 볼 때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라는 생각만으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많이 성장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어려움이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읽고 쓰는 활동에서는
그 흔적이 가끔 보입니다.


글쓰기는 ‘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일입니다.

머릿속에서 생각을 떠올립니다.

그 생각을 문장으로 만듭니다.

자신이 쓴 문장을 다시 읽습니다.

무슨 말을 썼는지 확인합니다.

앞 문장과 뒷 문장이 연결되는지도 살펴봅니다.

그리고 틀린 부분을 고칩니다.

다시 읽습니다.

또 고칩니다.

보통 아이들은 이 과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경험했던 아이에게는
이 과정 하나하나가 조금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못 쓰는 아이”라기보다
“쓰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아이”에 가까웠습니다.

 


두 아이 모두 결국 같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두 아이를 나란히 놓아봅니다.

첫 번째 아이는
글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어휘와 표현이라는 벽을 만났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읽고 쓰고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처리의 부담을 만났습니다.

출발점도 달랐고,

멈춘 이유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같았습니다.

미완성.

학교에서는 이 결과가 가장 먼저 보입니다.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 문장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의 눈으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한 문장 안에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AI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9명의 아이들은 자신의 글을 완성하고
AI에게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두 아이에게는 AI를 활용할 기회조차 제대로 오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AI에게 보여줄 글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I를 활용하면
아이들의 글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런데 AI가 아무리 좋은 질문을 던지고,
아무리 친절하게 피드백을 해주어도

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출발점까지
아이를 데려가는 일은 결국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AI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도움이 되는 도구일까요?

저는 이번 수업을 통해
그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오히려 AI를 쓰기 전에 봐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지금 어디에서 막혀 있는가?

첫 번째 아이는
단어에서 막혀 있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읽고 쓰는 속도에서 막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완벽하게 쓰려고 하다가
첫 문장에서 멈출 수도 있습니다.

결국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결과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교사는 그 아이가 멈춘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9명보다 2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11명의 아이를 보았습니다.

9명은 글을 완성했고,
2명은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제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그 2명이 오래 남았습니다.

왜 이 아이들은 못했을까?

무엇이 부족했을까?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던 걸까?

AI를 조금 더 일찍 사용했으면 달라졌을까?

아니면 내가 처음부터 과제를 다르게 설계했어야 했을까?

질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은
아이마다 다를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 도움을 찾으려면
먼저 아이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알아야겠구나.


이번 수업을 통해 

“그렇다면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다음 글에서는
이번 수업을 다시 돌아보며
두 아이가 글을 시작하고 끝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교사가 어떤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쩌면 AI를 잘 활용하는 수업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자리까지 도착하도록 돕는 수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직 초등교사의 리얼 노하우, 1수1

오늘의 수업을 연구하고, 내일의 교육을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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