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어수업의 목표는
‘인물을 하나 선택하고, 그 인물이 어떤 목표를 이루었는지 알아본 뒤 친구들과 공유하기.’
평소 같으면 아이들이 조사해 온 내용을 활동지에 적고 몇 명이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수업 목표를 보는 순간 문득 띵커벨이 생각났다.
‘이거 띵커벨 보드에 올려서 서로 보면 재미있겠는데?’
아침 시간에 얼른 띵커벨을 열고,
아이들이 조사한 내용을 직접 올릴 수 있도록 보드를 하나 만들어 두었다.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이 미리 조사해 온 인물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올리는 글을 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재미있는 장면들이 계속 나타났다.

1.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오늘도.....야구다!
한 아이가 목표를 이룬 인물로 야구선수를 선택했다.
역시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인물을 찾았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야구선수였지만, 아이는 그 선수의 이야기를 꽤 진지하게 전달해주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 주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해서 그 인물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아이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목표를 이루어낸 사람이었고, 어쩌면 그 선수가 아이에게는 앞으로 닮고 싶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교사가 모든 분야의 인물을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이에게 중요한 인물을 발견하고,
“네가 이 사람을 왜 선택했는지 이야기해 줄래?”
라고 물어봐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수업이 될 수 있다.
2. 스티커가 내 뒷통수를~
그리고 문제가 하나 생겼다.
띵커벨을 사용하면서 아이들이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기능이 눈에 들어왔다.
스티커였다.
“글을 올린 친구들은 스티커도 하나씩 올려보세요.”
딱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이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던 모양이다.
하나씩 올리라고 했는데...
너도 하나.
나도 하나.
저기도 하나.
어느 순간 보드 가운데에 스티커가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마구마구 올라왔다.
‘어? 이건 아닌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결국 교사의 통제 모드가 발동했다.
“이제부터 스티커 올리면 활동 중단할 거야!”
조금 과격한(?) 경고까지 하고 나서야 스티커 행렬이 멈췄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나는 조금 진땀을 뺐다.
역시 디지털 도구는 교사가 예상한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기능 하나를 열어주면, 그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오늘의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 스티커 사건이었다.
3. “선생님, 하나 더 올리고 싶어요.”
잠시 후 한 아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하나 더 올리고 싶다.”
나는 당연히 스티커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안 돼. 더 이상 스티커 올리면 글이 안 보여.”
그랬더니 아이가 말했다.
“아니요. 스티커 말고 인물이요.”
아, 인물을 하나 더 올리고 싶다는 이야기였구나.
“그럼 더 쓰고 싶은 친구들은 하나씩 더 올려도 돼.”
그렇게 해서 어떤 아이는 인물 두 명을 올렸고, 어떤 아이는 한 명의 인물만 올렸다.
정해진 개수만큼 똑같이 작성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더 알아보고 싶은 만큼 해볼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권00은 누구?
아이들이 올린 글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데 조금 이상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고, 역사 속 위인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반 아이가 적어 놓은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권○○이 누구야?”
아이에게 물었다.
“앞에 나와서 소개해 줄래?”
아이가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엄마예요.”
아이들은 순간 집중했다.
엄마가 장구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장구의 신이라고 소문난 이00씨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꾸준히 배우고 노력한 끝에 지금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가르쳐 준 이00씨와 함께 전국 공연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엄마가 목표를 이룬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리고 여기서 이○○ 씨는 바로 저희 아빠랍니다.”
순간 교실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는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목표를 이룬 사람’이라고 하면 유명한 위인이나 연예인, 운동선수 같은 사람을 떠올린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자신의 가족도 충분히 그런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오히려 매일 곁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있으니, 그 이야기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이 아이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남달랐다.
처음에는 엄마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아빠까지 등장시키는 반전이라니.
말하는 솜씨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감각에 은근한 끼가 느껴졌다.
5. 수업을 준비하다가 띵커벨을 열었을 뿐인데
오늘 수업은 특별한 계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수업 목표를 읽다가 문득 띵커벨이 생각났고, 아침에 보드를 하나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작은 변화 덕분에 아이들이 조사해 온 인물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서로 어떤 사람을 선택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야구선수를 찾아왔고,
누군가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왔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을 목표를 이룬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중간에는 통제하지 못했던 스티커 사건도 있었다.
수업은 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아이들의 생각이나 성격이 더 잘 드러날 때도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수업을 하면서 자꾸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것도 글로 써볼까?’
예전에는 수업을 하고 나면 그냥 하루가 지나갔다.
그런데 요즘은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기록할 장면을 찾게 되고, 수업을 하면서도 아이들의 말 한마디를 기억해 두려고 한다.
오늘의 띵커벨 수업도 그렇게 남겨두고 싶었다.
디지털 도구 하나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도구를 하나 열어주었더니 아이들의 생각과 개성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보였던 수업.
오늘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장면이다.
현직 초등교사의 리얼 노하우, 1수1
오늘의 수업을 연구하고, 내일의 교육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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